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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합스부르크 왕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13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오스트리아를 거점으로 중부 유럽의 패권을 잡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 자리를 세습하면서 근세 유럽의 얼마 안 되는 최고의 권위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정보로는 왜 유명한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는 정보를 작성하여 인문학 지식을 늘려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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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유럽 귀족의 작위 정보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시작

      합스부르크 왕가
      [합스부르크 가문의 발상지 스위스 북부 아르가우의 함스부르크 성채]

      귀족의 작위 체제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공작 > 후작 > 백작 > 자작 > 남작]의 순서에 맞추어 이해를 하면 쉽습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를 원래 스위스 북부 변방을 지키던 백작이었지만, 신성로마 제국 황제로 합스부르크 루돌프 1세가 최초로 등극하면서 그 명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어떤 나라인가?

      신성로마제국
      [신성 로마 제국 구역]

      신성 로마 제국은 중부 유럽에 존재했던 다민족 국가 체제의 나라로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연방국가입니다. 과거 서로마 제국을 이어받아 프랑크 왕국을 시작(800년)으로 독일 왕국과 이탈리아 왕국을 통합(962년)하고 교황 요한 12세로부터 황제 대관을 받으면서 제위가 부활하여 신성 로마 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나폴레옹 전쟁 도중인 1806년 황제 프란츠 2세가 퇴위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은 해체되었습니다.

       

      미드 "왕좌의 게임"의 칠 왕국이나 레이펜테나 연대기의 신성 팔마 제국 등 많은 판타지 소설들이 신성 로마 제국을 모델로 한 가상의 국가이며 많은 유럽의 중세 역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19세기 나폴레옹이 황제로 스스로 등극하기 전까지 유럽에 황제가 있었던 국가는 3개뿐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신성 로마 제국, 오스만 왕조의 오스만 제국(오늘날의 튀르키예), 로마노프 왕조의 러시아 제국 이렇게 3개국만 황제가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 제국의 후예여야 황제, 제국으로 칭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서로마제국 → 신성 로마 제국 │ 동로마제국 → 오스만 제국 & 러시아 제국)

       

      합스부르크 가문은 왜 유명한가?

      합스부르크 가문

      '시골의 백작 가문에서 제국의 황실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유럽의 패자로 급부상할 계기가 마련된 것은 13세기 신성 로마 제국의 강력한 교황권과 제후 간의 권력 다툼으로 약 20년간 황제가 선출되지 못한 혼란한 대공위 시대(1254~1273) 때문입니다. 선거권을 가진 제후들은 자신이 황제를 하기는 싫지만 남의 세력이 커지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타협책으로 약한 가문의 가주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는데, 이때 포착된 것이 바로 합스부르크 가문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아르가우 주의 일개 백작에서 황제가 된 루돌프 1세는 주어진 기회를 이용하여 가문의 영지를 오스트리아로 확장하여 기반을 단단히 다져 갔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결혼 동맹을 무기 삼아 세력을 키우다'

       

      이 시기 유럽의 각 국은 결혼 동맹을 세력 강화의 기본 전략으로 활용했지만 합스부르크는 특히 그것을 잘 활용하여 세력을 급속히 키웠습니다. 그리고 1438년 알브레히트 2세가 신성로마 제국 황제에 오르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의 전성시대가 열렸고, 그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그 제위를 유지합니다.

       

       

      프랑스혁명

      '프랑스혁명으로 가문이 위기에 빠지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프랑스혁명이 터지면서 혁명 전파를 두려워한 여러 왕정과 합스부르크 가문은 대 프랑스 전쟁을 일으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공주이자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구실로 전쟁을 벌였지만 혁명 프랑스 군의 놀라운 전투력과 새롭게 등장한 나폴레옹에게 패배하여 벨기에와 이탈리아를 뺏겨버리며 위기에 처합니다. 그리고 프란츠 2세는 합스부르크의 영지를 하나로 통합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을 세우고 영국, 러시아, 프로이센과 손잡았으나, 치명타를 입고 1806년 신성 로마 제국 자체가 와해당했습니다.

       

       

      '민족주의 물결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흔들리고,

      1차 세계 대전으로 합스부르크 시대가 막을 내리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민족주의의 물결 속에서도 한동안 버텼으나 1866년 벌어진 보오전쟁의 패배와 이탈리아 통일운동 등의 여파로 제국 내 여러 민족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여 영향력이 줄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으로 카를 1세가 퇴위하며 길었던 합스부르크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의 일세를 풍미한 이름 높은 가문으로 대접받으며, 근대 유럽의 파란만장한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으로 전환한 지 100년이 넘어가고 있음에도 합스부르크 가문의 가주는 비록 허울뿐이지만 아직 오스트리아 황제, 헝가리 국왕, 보헤미아 국왕 등의 작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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